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1828년 9월 9일 러시아 툴라 주의 가족 소유지인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유하고 귀족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집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카잔 대학교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톨스토이는 특히 그의 서사 소설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로 세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글쓰기 스타일은 사실주의, 복잡한 성격 전개, 철학적 및 도덕적 주제에 대한 탐구가 특징입니다.
"전쟁과 평화"는 방대한 작품으로 1865년부터 1869년까지 연재 형식으로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 시대와 프랑스의 러시아 침공 당시 다섯 귀족 가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설은 역사적 사건, 허구의 인물, 전쟁, 사랑, 운명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함께 엮습니다.
1873년에서 1877년 사이에 출판된 "안나 카레니나"는 결혼한 안나 카레니나와 젊은 장교 브론스키 백작 사이의 비극적인 사랑 사건을 중심으로 합니다. 소설은 복잡한 심리적, 정서적 상태, 사회적 규범, 개인 선택의 결과를 탐구합니다.
그의 문학적 업적 외에도 톨스토이는 사회 및 정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비폭력 저항의 개념을 신봉했으며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같은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친 소극적 저항의 개념을 믿었습니다. "신의 왕국은 당신 안에 있다"와 "내가 믿는 것"과 같은 톨스토이의 후기 작품은 악에 대한 무저항과 제도적 교회에 대한 거부를 강조하면서 단순하고 영적인 형태의 기독교를 옹호했습니다.
톨스토이의 삶은 개인적인 투쟁과 실존적 질문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는 영적 위기와 도덕적 딜레마를 경험했으며 삶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말년에 그는 금욕적인 생활 방식을 채택하고 채식주의를 받아들였습니다.
불행하게도 톨스토이의 말년은 그의 부와 작품에 대한 권리의 분배를 놓고 가족과의 갈등으로 얼룩졌습니다. 그는 1910년 11월 20일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학과 철학에 대한 레프 톨스토이의 영향은 계속해서 심오하며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고 기념되며 전 세계 수많은 작가와 독자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톨스토이 명언모음
가장 해로운 일은 진정한 지식은 배제한 채 모호한 말이나 해석을 구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학자라고 오인되고 있는 사람들은 모호한 해석으로 뚜렷하지 못한 가공적인 말을 억지로 짜냄으로써 그러한 해로운 일을 굳이 범한다.
결혼은 두 사람을 태우고 격랑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다. 한 사람이 갑자기 움직이면 배는 가라앉는다.
겸손이란 자신을 죄 많은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자신의 선행을 자신의 덕으로 돌리지 않는 것이다.
공정함에는 희생이 따른다.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으며 존재하는 것은 오직 현재뿐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때는 현재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현재 당신이 무슨 이유에서든지 관계하고 있는 그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후에도 자신이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현재 무슨 이유로든지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사랑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오직 사랑하기 위해서만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권태란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다.
그림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밝은 빛이 있다.
그저 재미 삼아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은 매우 큰 죄악이다.
길을 걸어가려면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선량한 삶을 영위하려 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타인의 삶을 어디로 이끌어 가고 있는지 알아야 선량한 삶을 살 수 있다.
깊은 강물은 돌을 집어던져도 흐려지지 않는다. 모욕을 받고 이내 발칵 하는 인간은 작은 웅덩이에 불과하다.
나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을 올바르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다.
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짧을수록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삶이 최고라고 여기지만, 나이가 들고 지혜가 자랄수록 정신적인 삶을 최고로 여긴다.
남과 사이가 좋지 못하거나 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하거나 당신이 옳은데도 그 사람이 동조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책망받을 것이 아니라 정작 책망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 사람에게 마음과 정성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발견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 것. 만일 지금 이 생활이 이성이 요구하는 현실적인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절대 두려워하지 말 것.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정의, 우월, 특권을 거부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것. 내가 가진 모든 정성을 다해 의심할 수 없는 영원불멸의 인간 계율을 실행할 것. 자기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떠한 노동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노력할 것.
내가 이해하는 모든 것은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한다.
내가 진정으로 따르는 신앙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것은 어울리기 매우 힘든 모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뉘우치고 회개한다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악하며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자기가 지은 모든 잘못된 행위를 인정하고 영혼을 깨끗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과 다른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 나를 버리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이런 사랑에서 우리는 복된 삶과 더불어 세상에 나온 보답을 얻으며 세상의 머릿돌이 된다.
다른 사람들과 무리 지어 있을 때는 홀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홀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존중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이고, 자신의 마음을 존중하지 못하면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가치관과 종교를 믿도록 강요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결정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고 그들에게 선택을 맡기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의 사람이나 후자의 사람이나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전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죄악이 있고 후자는 자신에 대한 죄악이 있다.
다른 사람을 책망하는 것은 무조건 잘못된 일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어떤 말을 할까 항상 귀 기울이는 사람은 결코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한다.
다정한 벗을 찾기 위해서라면 천 리 길도 멀지 않게 갈 수 있다.
단순히 암기해서 얻은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부단히 노력해서 얻은 지식만이 진정한 지식이다.
당신이 행복하길 원한다면 그저 행복하면 된다.
돈이 아니라 좋은 생각과 좋은 믿음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 두려워하라.
두 사람이 격렬하게 논쟁하는 경우 그 논쟁의 책임은 한 사람에게만 있지 않고 두 사람 모두에게 있다. 따라서 적어도 한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말하면 논쟁은 곧바로 그치게 될 것이다.
말을 제대로 못 했던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면, 침묵을 지키지 못했던 것에는 백 번 후회해도 부족하지 않다.
모든 사람은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자기 자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미래의 사랑은 없다. 사랑이란 언제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활동이다. 사랑을 지금 보여 주지 않으면 사랑이 없는 사람이다.
믿음은 삶의 동력이다. 믿음이 없으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이 살고자 한다면 무엇인가를 믿어야 한다.
부단한 노력 끝에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유를 달성한 사람만이 진정한 인생 목적을 알게 된다.
사람들의 고통과 타락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이 나를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일하게 하고 반대로 나 자신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일하게 하여야 한다.
죽음의 공포는 사람들이 그들의 잘못된 관념에 의해 형성된 국한된 삶의 작은 부분을 모든 인생이라고 착각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자신을 정복하는 일이다.
사람이 깊은 지혜를 갖고 있으면 있을수록 자기의 생각을 나타내는 말은 더욱더 간결해진다.
삶은 끊임없는 기쁨일 수 있고 또한 항상 그래야 한다.
삶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세상의 어리석음과 추악함을 자신의 거울로 삼아라.
수로를 관통함으로써 양쪽의 물이 똑같아지는 것처럼, 지혜의 속성 가운데 현자의 지혜가 무지한 자의 지혜로 흘러가는 것이 있다면 정말이지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혜는 스스로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곧 지혜란 스스로 애쓰고 노력해야 얻어진다는 사실이다.
나쁜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쓸데없는 수많은 지식은 알량한 자존심만 키울 뿐, 삶의 기본 원칙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아름다움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이 얼마나 완벽해 보이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악담을 듣거나 꾸지람을 듣거든 기뻐하라. 칭찬을 들으면 마음을 가다듬어라.
어떤 선행이 어떠한 목적 아래에 행해진다면 그것은 이미 선행이 아니다. 목적이 전혀 없을 때에 비로소 참된 선행을 할 수 있다.
언어는 사상의 표현이기 때문에 인간과 인간을 결합하게 하거나 단절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언어는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
예술은 단순히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예술가가 경험한 그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다.
욕망은 처음에 문을 열어 달라고 간청하다가 어느덧 손님이 되고 곧 마음의 주인이 된다.
우리는 가난을 예찬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난에 굴하지 않는 사람을 예찬할 뿐이다.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 그리고 이 세계 속에 있는 선함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어야만 한다. 믿음이야말로 선함이 실현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길을 잃었다고 말했기 때문에 길을 잃은 것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고 생각할 뿐, 사랑을 주는 이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원하건 원치 않건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인간은 생업 활동을 하면서 지식과 예술 작품을 나누면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다. 무엇보다 도덕적 의무로 연결되어 있다.
위대함이 있는 곳에는 단순함, 최선, 진실이 있다.
유익하든지 아니면 해가 되든지 예술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을 믿게 하는데 강력한 수단은 없다. 따라서 예술을 어떻게 사용할까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육체에 꼭 맞는 옷을 입기보다는 양심에 꼭 맞는 옷을 입는 것이 더 좋다.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자신을 높이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남을 탓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남을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그릇을 가장 크게 할 수 있다.
인간은 강과 같다. 물은 어느 강에서나 마찬가지며 어디를 가도 변함없다. 그러나 강은 큰 강이 있는가 하면 좁은 강도 있으며, 고여있는 물이 있는가 하면 급류도 있고, 맑은 물과 흐린 물, 차가운 물과 따스한 물도 있다. 인간도 바로 이와 같다.
인간은 분수와 같다. 분자는 자신의 실제이며 분모는 자신에 대한 평가이다. 분모가 클수록 분수는 작아진다.
인간은 육체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인생을 산다. 사람들이 만약 이 사실을 인식하고 육체가 아닌 영혼에 일생을 집중하여 산다면 비록 쇠사슬에 묶이고 쇠문 속에 갇히더라도 그는 자유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인간이 행하는 악 대부분은 나쁜 의지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맹신과 그릇된 사상에서 비롯된다.
인류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인간은 알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이 가야 하는 길, 즉 자기완성을 향하여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인생에서 두 가지 가장 강력한 힘은 인내와 시간이다.
인생의 목적을 알고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을 깨닫는 것이 바로 지혜다.
자만심과 어리석음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
자신을 완성하려면 정신적인 것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잘 맺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자신을 살찌워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작은 변화가 일어날 때 진정한 삶을 살게 된다.
잘못된 사회를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을 일깨우고 단련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을 일깨우고 단련시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자신을 더욱 단련시키는 것이다.
전쟁은 너무나도 불의하고 추악한 것이므로 전쟁을 일으키는 자는 자기 속에 있는 양심이 외치는 소리를 억눌려야 한다.
전혀 믿지 않는 일이나 의심스럽게 여기는 일을 가르침을 받고 있는 자에게 설교해서는 안 된다. 특히 그것을 의심할 바 없이 신성한 진리로 다루며 가르쳐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행위는 커다란 죄악이다.
정성과 마음을 다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일수록 상대방에게서 정성과 진실한 마음을 더욱더 잘 발견하게 된다.
좋은 말은 언제나 단순하며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이해되며 언제나 합리적이다.
좋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오히려 좋은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빛을 내려고 전전긍긍하기보다는 깨끗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간의 영혼은 유리그릇과 같다. 인간은 이 그릇을 더럽힐 수도 더 깨끗이 빛나게 할 수도 있다.
죽음,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덮어씌우고 있는 바깥 껍질의 변화다. 바깥 껍질과 그 속에 있는 알맹이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죽음을 망각한 생활과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인지하는 생활. 전자와 후자는 서로 매우 다르다. 전자는 동물의 상태에 가깝고 후자는 마치 신의 경지에 이른 것과 같다.
죽음의 공포보다 강한 것은 사랑의 감정이다. 헤엄을 못 치는 아버지가 물에 빠진 자식을 건지기 위해서 물속에 뛰어드는 것은 사랑의 감정 때문이다. 인생사는 수많은 모습이 있지만, 그것을 해결할 길은 오직 사랑뿐이다. 사랑은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약하고 남을 위해서는 강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라.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라. 지금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라.
지난날의 행위가 앞으로의 삶에 많은 부담을 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영혼을 살찌우는데 정진하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지식은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있어 믿음은 변할 수 있지만 사랑은 영원하므로 절대 변하지 않는다.
지식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한다면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유익한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수많은 지식이 좋게 포장되어 유익한 지식처럼 보인다. 따라서 필요로 하는 지식이 있다면 신중하고도 꼼꼼하게 헤아려야 한다.
지혜는 정신적인 생활, 곧 자신과의 외로운 교감을 통해서 얻어질 뿐만 아니라 남들과의 교감을 통해서도 얻어지기도 한다.
지혜는 헤아릴 수 없다. 지혜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지혜는 더욱 삶에 중요하게 다가온다. 지혜로운 우리의 삶은 시시각각 좋은 모습으로 변화한다. 지혜를 얻게 되면 영혼의 평안함을 느낄 것이다.
진리란 금과 같아서 불려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금이 아닌 것을 모두 씻어냄으로써 얻어진다.
진리란 기쁨일 뿐만 아니라 폭력보다도 강하다. 진리의 삶을 추구하라. 그것은 항상 우리가 당연히 할 일과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일, 그리고 하는 중에도 그쳐야만 할 일을 보여준다.
진실이 진실로서 들리게 하려면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말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 메시지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을 때는 적어도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즉 거짓말을 하였던가 아니면 정성과 마음을 다하지 않았거나 일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말에 있지 않고 행동에 있으며 그런 사랑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지혜를 준다.
착한 사람이란 자신의 죄는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자신의 선행은 곧 잊어버리는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란 그 반대다. 자신의 선행은 언제까지나 잊지 않으면서 자기가 저지른 죄는 곧 잊어버리고 마는 사람이다.
책망받고 고쳐야 할 것이 있는가?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하고 자신이 직접 찾아낼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친절은 모든 비난을 해결한다. 또한, 친절은 얽힌 것을 풀어헤치고 곤란한 일을 수월하게 하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꾼다.
큰 부가 삶을 쉽게 만든다는 믿음은 짐을 지고 걷는 일이 더 쉽다는 생각과 같다.
평범한 지식을 산더미처럼 쌓는 것보다 삶에 필요한 지식을 조금 아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한 해의 가장 큰 행복은 한 해의 마지막에서 그 해의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자신을 느낄 때이다.
한마디의 말로 사람들의 연합을 깨뜨리는 것은 아닌지 항상 주의해야 한다.
해야 할 것을 하라. 모든 해야 할 것은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 동시에 특히 나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행복은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산물이다.
행복은 외적 환경,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외적인 환경을 해석하는 방식에 달려있다.
행복을 위해 봉사할 때 지식은 그 가치가 있다.
행복한 가정은 어느 집이나 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모두 다르다.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얼마나 잘 맞는가 보다 다른 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이다.
행위가 인생이 되고 곧 운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법칙이다.
현명하고자 한다면 현명하게 질문하는 방법, 주의 깊게 듣는 태도, 더는 할 말이 없을 때 말을 삼가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호감이 가지 않거나 심지어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미워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보면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생활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생활을 할 때 한 가지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즉, 인생을 가치 있게 살고자 원한다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훌륭하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중대한 일이지만 한편으로 훌륭하게 죽는다는 것은 거의 그에 못지않게 더욱 중대한 일이다. 죽어가는 사람이 보이는 행동은 사람들에게 위대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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